어느 날 정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난다면,
폭우가 쏟아져서 온 집안이 물바다가 된다면,
아니면 큰 불이 나서 온 가족이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말 중요한 물건만 급하게 챙겨 도망쳐야 하는 순간에
당신이라면 무엇을 가지고 나올 건가요?
경주 지진, 포항 지진. 한국에서도 점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배워야만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익힐 수 있는 재난 대비 교육은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사실 네이버 화면을 넘겨 보다가, 우연히 재난 대비 교육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흥적으로 교육을 신청하게 되었다. 교육 참가 비용은 단돈 만원!이었고 3개의 과정으로 구성된 4시간짜리 교육이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교육인지, 비상시적으로 개설되는 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네이버 해피빈 ‘가볼까’를 통해서 신청할 수 있었다.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에 위치한 바스락홀에서 진행되었다. 바스락홀은 이전에도 다른 교육 때문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의자 등받이가 없다 보니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시간 교육에는 약간 부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오늘 교육은 참여자의 절반 정도가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였고, 2, 3교시 과목이 조별 실습이 포함되어 있어서 오늘 교육과는 잘 어울렸던 것 같다. 50-60명 정도의 인원이 참여했던 것 같다. 종료 후에는 에코백에 비상식량과 몇 가지 다과, 팸플릿 등을 담아서 나누어 주었다. 별도의 수료증이 발급되지는 않았다.
1교시는 ‘가족을 지키는 재난대응 매뉴얼’이라는 이름의 지진상황에서 대비에 대한 이론 교육이었다. 지진이 빈번히 일어나 대응에 대한 노하우가 풍부한 일본의 사례를 많이 들어 주셨다. 교육 내용을 요약해 보면,
첫번째는 항상 어디를 가든 ‘비상구’를 잘 확인해 둘 것.
두번째는 긴급 상황에서 너무나도 유용하기에 휴대전화는 꼭 소지할 것,
세번째는 머리가 다치지 않도록 하고, 지진이 완전히 멈춘 후에 움직일 것.
이 정도 였던 것 같다. 책상 밑으로 숨거나, 건물의 모서리 등으로 피하는 것은 교육 참여자의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번 더 리마인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교육 시간 자체가 너무 짧다 보니 내용이 풍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2교시는 응급처치 실습이었는데, 이 교육의 포인트는, 119를 잘 부르자는 것! 어설프게 응급 처치하다가 잘못될 수도 있고, 진짜 급하거나 구조대가 없는 상황이라면 지지하는 정도로만 간단히 처치를 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응급처치 실습 내용도 팔목이나 발목이 부러졌을 때, 붕대와 팔걸이 등 물품이 없는 상태에서 부목을 만들어 지지하는 방법이었다. 페트병을 잘라서… 박스테이프로 붙이고… 21세기 한국에서 이런 일을 겪을 일은 무척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강사님께서 처음 계획했던 ‘삼각건’ 사용법으로 교육을 진행했으면 훨씬 더 유용했을 것 같았다.
3교시는 재난대비 DIY키트 만들기였다. 몇 년 전부터 비상상황을 대비하여 생존 배낭을 구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SNS나 유튜브 등에서도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 같다. 비상식량, 손전등, 휴대용 정수기나 생수 등..
해당 교육시간에서는 갑작스러운 화재로 인해 대피하여 며칠간 보호소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구호물자는 3일 이후에나 도착한다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했다. 그 기간을 버텨내기 위해 어떤 물품이 필요한지 조별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교육시간에 가정한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30대 부부이고, 4살 딸과 10개월 된 아들이 있다.
4살 딸은 아토피가 있어서 계속 약을 먹고 있다.
우리 조에서는
(아이를 위한) 젖병, 기저귀, 생수, 분유, 겉옷, 속옷, 양말, 아토피약
햇반, 라면, 핸드폰 충전기, 핸드폰, 비누, 필기도구, 응급키트, 랜턴, 휴지, 생리대, 지갑, 칫솔, 치약, 호루라기 정도 챙긴 것 같다.
그 외에도 다른 조에서는 믹스커피, 아이들의 장난감, 간식, 애착이불 등 정서적인 안정을 위한 물품을 챙기기도 하였는데, 역시 아이들을 둔 부모의 마음으로 선정한 생존 물품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였다.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님은 실제 대피소에서의 경험이 있으신 분이었다. 그분 말씀으로는 대피소에는 생각보다 여러 단체로부터 지원 물품이 상당히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특히 생수, 라면, 햇반 이 삼대장은 쌓여 있을 정도라고. 청결을 위한 비누, 샴푸 등의 키트도 비교적 잘 들어오는 편이라고. 꼭 필요하지만 지원받지 못하는 물품의 예시로는 속옷류가 대표적이고, 혹시 매일 챙겨 먹는 약 종류의 경우에도 지원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피 상황에서는 개인적으로 넉넉히 챙기면 좋을 것 같다는 코멘트를 해 주셨다. 위생적으로 취약할 수 있기 때문에 손 소독제를 가지고 있다면 현장에서 유용할 것이라고 하셨다. 3교시 교육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부족하여,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내가 혼자서 목록을 정했다면, 나는 3일을 버티기 위해서…
생수, 햇반, 라면, 휴지, 물티슈, 폼클렌징, 샴푸, 화장품, 치약, 칫솔.
핸드폰 충전기, 보조배터리, 맥가이버 나이프, 핸드폰.
겉옷, 여벌옷, 속옷, 양말, 상비약, 지갑, 그리고 개……, 이 정도 챙길 수 있을까? 많다, 많아.
사실 긴급한 상황에서 커다란 가방을 찾아서, 필요한 짐을 다 넣고 현장에서 탈출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행정안전부에서는 가족 1명당 생존 가방 하나를 준비하여 물품을 미리 갖춰 두고 있어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지만, 현실 가정에서 적용하기에는 아직까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아직까지는 사회적 인식이 미리 대비하는 사람을 너무 유난스러운 것으로 보기도 하고. 대비하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
영화 기생충에서는 커다란 침수 피해가 온 마을을 덮치는 장면이 나온다.
쏟아지는 폭우, 배수시설은 역류하고, 방 안의 물이 넘쳐서 가슴까지 차오르는데.
그 극한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챙겨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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